한 사업장에서 300명 이상이 일하는 기업의 비정규직 비율이 38.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보다 소폭 증가했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둘러싼 비판 여론이 일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30일 300명 이상 노동자가 일하는 기업 3233곳의 ‘고용형태’를 공시했다. 이를 보면, 전체 459만3000명 가운데 175만9000명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지난해 36.8%에서 38.3%로 1.5%포인트 늘었다. 이런 고용형태 악화는 주로 기간제와 시간제(아르바이트) 노동자가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기간제와 시간제 비율은 지난해 16.9%에서 1.4%포인트 늘어 18.3%가 됐다.
비정규직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사내하도급의 형태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였다. 도급 형태로 해당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19.9%에서 20.0%로 0.1%포인트 늘었다.
고용형태 공시제는 직접고용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사업장에서 300명 이상 일하는 기업들한테 매해 3월31일까지 고용 형태를 정부의 고용정보망인 워크넷(work.go.kr/gongsi)에 입력하도록 해 그 결과를 공개하는 제도다.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좋은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야 할 대기업이 되레 비정규직 노동자를 많이 쓰고 있는 현실이 드러났다. 간접고용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500명 미만과 500~999명 기업에서 각각 14.0%, 13.0%였다. 하지만 5000명 이상 일하는 기업은 27.3%에 달했다. 이는 1년 전보다 1.3%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올해부터 따로 조사한 단시간 노동자 비율도 500명 미만 기업은 3.2%였으나 5000명 이상 기업은 4.7%나 됐다. 다만 근로계약 기간이 정해진 기간제 노동자 비율은 500~999명 규모 기업에서 21.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 평균을 넘어선 업종은 운수(21.8%)·도소매(22.9%)·제조(25.0%)·예술(27.1%)·건설(44.6%) 등이었다. 특히 제조업은 넷에 한명꼴로 간접고용 노동자를 쓰고 있었다. 이는 고용 문제에 대한 ‘적색 신호등’으로 해석된다.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은 파견 금지 업종이어서 사내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불법파견 시비가 끊이지 않는 탓이다. 현대·기아차가 대표적인 예다.
노동계는 정부가 기업의 자율 의지를 믿고 가이드라인 수준의 대책을 내놓을 게 아니라 불안정 노동을 부추기는 대기업을 강하게 규제하고 나서라고 주문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낸 논평에서 “지불 능력이 있는 거대 기업들이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는 주범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현 상황에서 필요한 대책은 비정상적인 고용형태를 바로잡을 제도적 강제”라고 밝혔다.
고용형태 공시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고용부가 올해 공시기업 가운데 지난해 수치와 크게 달라진 기업 174곳을 직접 확인해보니, 대부분 공시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노총은 “고용형태 개선 사업장에는 인센티브를 주고 허위·부실 공시 사업장에는 벌칙을 줘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