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의 교통 표지판은 일본어를 모르는 외국인에게 불친절하기로 악명이 높다. 일본어로만 쓰여졌을 뿐 영어가 함께 표기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시정지'를 뜻하는 표지판은 'STOP' 대신 '멈춰라'는 뜻의 일본어인 '止まれ'만 쓰여 있다. 속도를 늦추라는 뜻의 '서행' 역시 'SLOW' 혹은 'SLOW DOWN' 등의 영어 표현 없이 '徐行'이라고만 적혀 있다.
17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이 같은 '악명'을 의식해 일본 경찰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뒤늦게 교통 표지판에 영어를 함께 적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일본 경찰은 '일시정지'와 '서행'을 뜻하는 도로표지판에 각각 영어 표기를 병기(倂記)하는 안을 발표했다. '일시정지' 표지에 'STOP'을, '서행' 표지에는 'SLOW' 표기를 함께 하자는 것이다. 각각 역삼각형인 표지의 틀과 색깔, 일본어 표기는 바꾸지 않도록 했다.
일본 경찰은 전문가 의견, 외국인 5천명에 대한 설문조사 등을 통해 이처럼 표지판을 바꾸는 방안을 확정했다. 내년 1월까지 의견을 더 수렴한 뒤 내각부령 등을 개정해 내년 하반기부터 표지판을 바꾸기로 했다.
일본 경찰에 따르면 외국인 운전자에 의해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는 작년 216건이 발생했다. 그 중 13건이 일시정지 위반이었다.
악명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찰이 섣불리 표지판 변경을 하지 못했던 것은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 노력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 1963년 이후 줄곧 사용하고 있는 일시정지 표지만 해도 전국에 170만개나 된다. 도쿄 올림픽을 겨냥하는 것이긴 해도 전국의 표지판을 바꾸는 데에는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는 별도로 일본 경제산업성은 올림픽 준비의 일환으로 공공시설 안내 표지를 정비하고 있다. 국제 표준과 다른 90종의 표지가 검토 대상이다.
이 중에서는 온천을 나타내는 표지를 변경할지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온천 표지는 동그라미 위에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수증기를 표현하는 이미지로, 한국에서 목욕탕 혹은 온천에 대해 쓰이는 것과 비슷하다.
일본 정부는 외국인이 볼 때 따뜻한 요리가 나오는 레스토랑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어른과 아이 3명이 욕탕에 몸을 담그는 장면을 묘사한 디자인을 새로운 온천 표시로 정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온천 업계는 현재의 온천 표지가 온천뿐 아니라 역이나 기념품 포장지 등 다양한 곳에서 쓰이고 있어서 올림픽 전에 정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반대하고 있다. 설문 조사에서도 일본인 응답자의 60%는 현행 유지에 표를 던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