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졸업유예를 신청한 대학생 박민수(25) 씨. 재학생 신분이라면 취직이 잘 될까 싶어서였다.
그는 졸업유예를 신청할 경우 최소 1학점을 이수해야 한다는 학칙에 따라 2학점짜리 교양과목을 신청했고, 60여만 원의 등록금을 납부했다.
이후 박 씨는 같은 처지의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친구는 학점 신청이나 별도의 등록금 납부 없이 졸업 유예를 신청했던 것.
박 씨는 "취업 준비에도 겨를이 없는데 (대학생) 신분 유지 대가로 억지로 수업을 들어야 된다니 학교가 도움은 못 줄망정 폐는 끼치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며 "취업 지원도 없이 등록금을 받아 챙기는 것은 지나친 장삿속이다"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대학가에서 수년째 운영 중인 '졸업유예제'가 학점을 신청하지 않아도 기성회비를 내야 하거나 무조건 학점을 신청해 등록금 일부를 납부하도록 하면서 대학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졸업을 미루는 이른바 '대학 5학년'들은 취업에 울고, 등록금에 또 한 번 우는 셈이다.
24일 전국의 4년제 대학들에 따르면 졸업유예는 졸업학점을 다 이수하는 등 졸업 요건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6개월 또는 1년 정도 졸업 시기를 늦출 수 있는 제도다.
지난 1월 한 취업포털사이트가 대학교 4학년생 62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10명 중 4명(42.7%)꼴로 "졸업을 연기할 계획"이라고 답할 정도로 졸업을 유예하는 취업준비생들이 늘고 있다.
◈무조건 학점 신청 요구도…취업 못해 학사모 미룬 청춘, 경제적 어려움에 또 좌절
문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
연세대, 서강대, 명지대, 경기대, 서울디지털대, 전북대 등 상당수 대학들은 졸업유예 신청 시 학점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 납부케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1~3학점 등록 시 등록금의 6분의 1, 4~6학점은 3분의 1, 7~9학점은 절반을 내는 식이다. 10학점 이상 들을 경우에는 등록금 전액을 다 내야 한다.
별도의 학점을 이수하지 않고 재학생 신분만 유지하는 데도 일정 비용을 내도록 하는 학교도 있다.
부산대와 한국해양대는 기성회비의 20%, 부경대는 기성회비 6분의 1을 납부해야 졸업유예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해당 대학 관계자들은 "졸업유예의 악용사례를 막기 위해 등록금을 부과한다"며 "학생 신분을 유지하는데다가 학교 시설을 사용할 수 있어 비용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아예 등록금을 받지 않거나 정액제로 전환해 학생의 부담을 줄인 대학이 있는 만큼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협성대와 동의대, 부산외대, 고신대는 학점 신청이 없으면 등록금을 별도로 부과하지 않는다.
특히 대전대의 경우 졸업유예 신청자들을 위해 취업능력개발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취업준비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박진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 간사는 "졸업을 유예하더라도 행정상으로만 유지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강제로 수업을 듣게 하고 등록금을 받는 것은 부당한 측면이 있다"며 "대학들이 일정 비용을 받는다면 취업준비생들에게 취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관계 당국인 교육과학기술부는 졸업유예제에 대해 대학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오면 해당 대학에 조정권고를 할 수 있을 뿐"이라며 "학사일정은 전적으로 대학자율에 맡기고 있다 보니 사례마다 접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CBS 윤철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