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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임금 격차 ‘여자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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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 여학생 학업성취도 세계 최고 수준… 한국 여성 시간당 임금은 남성의 64.6%
공부 잘했다는 자랑도 이젠 쑥 들어갔다. 서울에서 손꼽히는 명문대를 나왔지만 아직 ‘백수’다. 부모님은 주위 사람들이 딸 소식을 물을 때마다 자랑 대신 “전공이 안 좋아서…”라는 변명을 먼저 꺼내게 됐다. 취업률이 낮은 전공 탓만 할 수도 없다. 남들이 일자리 찾는 동안 해보고 싶은 일 다해 보겠답시고 반년 넘게 해외여행 다녀온 철없었던 과거의 자신이 밉다. 학위기에 ‘숨마 쿰 라우데’(최우등 졸업)까지 찍을 정도로 대학에서도 공부는 잘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취직엔 별반 도움이 안 됐다. 스물여덟 구직여성 최모씨의 이야기다.
“공부랑 취직이랑은 별개더라고요”
“당연한 얘기지만, 공부랑 취직이랑은 별개더라고요.” 최씨는 기업에서 자신을 내칠 만한 이유를 따져봤다. 가고 싶은 업종과 무관한 인문학 전공, 다른 신입 채용 지원자에 비해 높은 연령, 기본적인 부분은 채웠지만 딱히 차별화시킬 만한 점도 없는 스펙 등이 최씨의 약점이었다. “여자라서 발목 잡힐 때도 많아요. 눈을 낮추라기에 상대적으로 지원율이 낮은 기업에 면접 보러 가면 ‘학벌 좋은 여자는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많았으니까.” 결국 늦었지만 현실적인 선택지인 공무원 시험으로 눈을 돌렸다. 공무원 일이 전혀 내키지 않아도 ‘공부를 잘하니’ 합격할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한국은 공부 잘하는 나라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줄곧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 여학생은 남학생보다도 학업성취도가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내놓은 ‘교육에서의 성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65개국의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읽기·수학·과학 성적을 비교·조사한 결과 한국은 전체 대상국 가운데 3~8위 수준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세 과목 총 평균점수는 여학생이, 수학·과학 점수는 남학생이 높았다. PISA 기준 레벨 2를 넘는 성적을 받은 학생 비율로 따지면 한국이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는데, 여기에서도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더 성적이 좋았다.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이는 경향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추세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일단 여학생의 전체적 학업성취도가 남학생보다 높지만 일반적인 통념대로 여학생이 언어능력, 남학생이 수학능력에서 앞서는 현상 역시 공통적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모습은 똑같이 나타난다. 하지만 과학에서의 남녀 성적 격차는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정도의 격차가 아니었다. 과학과 수학에서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뒤떨어지는 현상도 점차 완화되는 추세다.
그러나 청소년기 여학생이 남학생을 성적에서 앞선 것이 사회 진출 이후 임금이나 일자리 수준에서도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는 가장 높은 수준의 학업성취도를 보이는 한국 여성은 청소년기가 끝나고 일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반대로 가장 높은 수준의 임금 격차를 경험하게 된다. 지난해 남성 시간당 임금 대비 여성의 시간당 임금은 64.6%로 3분의 2에도 못 미쳤다. OECD 보고서는 남녀 사이의 임금 격차가 생기는 이유 중 하나로 남녀가 서로 다른 직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부모들이 남자 자녀에게는 과학기술 분야의 직업을 추천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도 이러한 현상의 배경이 됐다.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은 남녀 임금 격차의 원인에 대해 “현대사회에서 가장 임금이 높은 직종은 기술·공학 및 수학 분야에 집중돼 있지만, 여학생이 이 분야로 지원하는 비율은 적기 때문”이라며 “같은 일을 하는데도 임금이 차이가 나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남녀가 다른 직종을 선택한다”고 지적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청소년기의 과학적 이해능력에 있어 남녀간 격차는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 직업을 선택하는 단계에서는 이와 같은 변화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시차가 발생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다가올 미래 세대일수록 과학기술 분야의 일자리를 선택하는 여성의 수도 늘어나 남녀간 임금 격차도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기술·공학 및 수학 분야 기피도 원인
그러나 이미 사회에 진출한 여성의 경우에는 교육수준이 임금 격차를 줄이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출산 때문에 한 차례 경력 단절을 겪은 강은주씨(36)는 이전 직장에서의 임금 수준을 회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씨는 명문 여대를 나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국책연구기관에서 몇 년 동안 일한 적도 있다. “이대 나온 여자…이긴 한데, 돈 버는 데에는 별 도움 안 되던데요.” 강씨는 일반적인 직장에 자리를 구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박사과정에 들어가 대학에서 시간강사로나마 수입을 얻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렇게 되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고 이전 직장에 그대로 다녔을 경우와 비교해 수입은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셈이다.
강씨의 경우처럼 성별 임금 격차는 여성이 자녀 출산 이후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하는 30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높아진다. 직장에서의 경력을 유지하는 비율이 높은 30대 초반까지는 5%에 못 미치던 남녀 임금 격차는 30대 후반부터 연령이 높아질수록 벌어져 가장 높은 50대 초반 연령대에선 50%에 육박하는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남성 임금노동자가 직장에서 퇴직하는 연령대인 5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남녀간의 임금 격차가 소폭이나마 줄어드는 실정이다.
여성이 학력에 비해 직장에서의 능력을 저평가받는 경향은 합리적인 요인보다는 사회·문화적으로 차별정서가 미치는 요인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의 ‘성별 임금 격차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근속연수 차이에 따른 임금 격차가 22.4%, 사업체 규모 차이에 따라 발생한 것이 8.2% 등으로, 현실을 감안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 격차 요인은 37.8%에 불과했다. 반면 실제 남녀 차별에 따른 임금 격차는 62.2%에 달했다. 이 가운데 단지 여성이어서 생산성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는 ‘여성손실분’이 58.3%로 추정됐다. 학업성취도를 비롯한 개인의 능력치가 제대로 발현되기 어렵게 만드는 정서적 걸림돌이 구조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여성은 결혼과 임신·출산, 육아 등으로 인해 근속연수가 남성보다 짧을 수밖에 없는 만큼 임금 차이가 과도하게 나지 않으려면 중단 없이 경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동시장에서 능력에 비해 차별과 낮은 평가를 받는 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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