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대자보 세대]<下>앵그리세대 되지 않게 하려면
신(新)대자보세대의 정치 성향은 어떨까. 이들은 부모 세대인 386세대처럼 정치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이들이 세대 간 화합을 가로막는 ‘분노의 세대’가 될 우려는 없을까.
먼저 신대자보세대 200명에게 자신의 정치 성향을 물었다. 이들은 중도(47.0%)-진보(31.5%)-보수(17.5%) 순으로 답했다. 지난해 10월 본보가 아산정책연구원과 공동 실시한 ‘한국인 의식조사’의 20대 이념 성향은 중도(41.4%)-진보(30.6%)-보수(28.0%) 순이었다. 20대 전체와 비교하면 진보의 비중은 비슷하고, 보수보다는 중도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지지하는 정당에 대해서는 ‘없다’는 응답자가 72.0%나 됐다. 정당별로는 새누리당(11.0%)-민주당(10.5%)-정의당(4.5%) 순으로 나타나 야당 지지율이 여당에 비해 약간 높았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는 ‘극단적 의견 대립’ ‘불통’ ‘언로 단절’ 같은 소통의 문제를 지적한 응답자(68명)가 가장 많았다. 특히 지난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릴레이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한국 사회의 ‘말하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나 현 정부의 소통 방식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나라를 자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신은 엄한 아버지고요. 집회를 하면 그냥 떼쓰는구나, 회초리를 들어서 착하게 해야지 그런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국민과 대통령은 부자 관계가 아니잖아요.”(천모 씨, 서울 K대 3학년)
이들은 소통의 내용 못지않게 타인을 존중하는 소통 방식을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녕들’ 대자보의 성공 비결도 20대가 선호하는 화법을 썼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기존 운동권 대자보는 거부감이 있어요.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온건하게 안부를 물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 같아요.”(김모 씨, 서울 S대 4학년)
“학생회 일을 했지만 운동권이라는 말은 불편해요. 운동권이란 말은 낙인 같아요. 투쟁하고 바꾸겠다고 강하게 의사표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어요.”(김모 씨, 경기 H대 3학년)
자유분방하게 표현한다. 건방져 보인 만큼 당당하다. 세계무대에서도 쫄지 않는다. 빅뱅의 리더 지드레곤은 신대자보세대의 아이콘 같은 존재다.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1세대 아이돌과 달리 200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신대자보세대의 '오빠'(2세대 아이돌)들은 기획사의 '상품'이기보다는 '아티스트'로서 자의식을 강조한다.
신대자보세대가 부모 세대와 같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렸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구의 68세대나 한국의 386세대처럼 사회마다 정치 사회적 변혁을 이끄는 세대가 있다. 신대자보 세대는 2000년대 초반 20대에 비하면 사회적 발언의 경험이 풍부해 앞으로 변화를 이끌 가능성도 높다”고 내다봤다.
반면 인구가 줄고 개인화 경향이 확산되는 만큼 과거처럼 강력한 세대의 출현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20∼24세는 약 349만 명으로 부모 세대인 50∼54세(427만 명)보다 78만 명 적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는 “현재 20대는 386세대 같은 강력한 기억의 공유점이 없다”면서 “틈틈이 정치적인 ‘번개’는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상설적인 조직이나 제도적인 힘을 갖추기 위한 지구력이나 지속력은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교수는 또 “사회적으로 불만은 꾸준히 있겠으나 불만 역시 개인화돼 있으며,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통신수단의 발달로 불만이 수시로 표출될 순 있어도 응집됐다가 폭발적으로 터지는 것은 어려운 시대가 됐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좌절한 젊은 세대의 불만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앞으로 빈번하게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한국처럼 압축 성장으로 역동적인 사회일수록 새로운 세대의 등장 주기도 짧아져 이로 인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안녕들’ 열풍처럼 징후적인 현상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을 경시해선 안 된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생각해 보면 지금 젊은 세대의 광범위한 분노와 좌절은 극단적인 반응으로 표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20대의 문제제기를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고, 사회학자인 오찬호 박사는 “기업과 일자리를 경제적 효용성으로만 다루기보다 세대 간 화합을 위한 문제로도 바꿔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앞으로도 대자보 같은 현상은 주기적으로 나타날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 삶이 절대 행복해질 것 같지 않거든요. 경제도 나아질 것 같지 않고, 취업도 잘 안 될 거 같고…. 한동안 잠잠하다가 또 견디기 어려운 시점에서 다시 터질 것 같아요.”(김모 씨, 서울 K대 2학년)
신대자보세대
부모세대의 매체인 대자보를 이용해 새로운 형식의 대자보 열풍을 일으킨 20대 초중반(1990∼1995년생) 청년들. ‘386세대’의 자녀인 이들은 2002년 미선·효순 추모 촛불집회,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에 참여해 ‘촛불세대’로 주목받은 바 있다. ‘우리’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이들은 ‘나’의 문제에 빠져 소극적인 ‘88만 원 세대’와 다른 성향을 보인다.
동아일보 구가인·박훈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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