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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어는 소통 아닌 사고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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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로 생각·대화할 때 분석적 사고 활성화
발음 신경쓴 회화 능력보다 의사소통 자체에 집중해야


예나 지금이나 종종 외국인으로 오인받는 필자는 이런 오해에 기분이 상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가벼운 오해는 즐기는 수준에 도달했다. 가끔은 일부러 외국인인 양 40년 가까이 살아온 도시를 낯설게 보는 연습도 해본다. 그럴 때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넓어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세상을 보는 관점을 넓히는 데에는 외국어를 배우는 것 이상으로 좋은 방법이 없다. 대표적인 외국어인 영어에 대해 흥미롭게도 우리들은 이중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 전 국민이 영어를 배우려고 발버둥치면서도, 막상 주변의 누군가가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면 눈총을 주는 이중적인 심리가 깔려 있다. 영어에 대한 왜곡된 심리가 학창시절 느꼈던 영어 과목에 대한 부담감, 단일민족의 자부심과 애국심, 반미적 저항정신 등과 결합하면 영어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애증의 감정으로 발전한다.

최근 외국어 능력이 이성적 사고를 활성화한다는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 연구팀은 외국어를 사용해 경제적 판단을 하면 손실 기피 성향이 줄어든다는 연구 논문을 최근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 학술지에 발표했다. 손실 기피 성향이란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쳐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특성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외국어가 이런 불합리한 사고를 조정한다니 궁금증을 일으킬 만하다.

논문 공동 저자인 시카고대 석사과정 안순규 씨는 충남대 학생 144명에게 금액이 작은 A형(200원을 잃거나 500원을 얻음)과 금액이 큰 B형(11만9000원을 잃거나 17만원을 얻음) 내기를 각 9개씩 제시했다. 학생들은 기대이익(예상 가능한 이익과 손해의 차이에 확률을 곱한 값)이 150원인 A형 내기를 쉽게 받아들였지만, 금액이 큰 B형 내기는 거절하는 경향을 보였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B형의 기대이익이 약 2만5000원이므로 내기를 받아들일 만했지만, 손실 기피 성향이 작동하면서 판돈이 큰 내기를 피한 것이었다.

연구팀은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한 그룹에는 한글을 사용했다. 다른 그룹은 컴퓨터 화면이 모두 영어로 된 환경에서 실험에 참가했다. 금액이 작은 선택에서 두 그룹의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금액이 커지자 결과가 달라졌다. 한글을 사용한 그룹이 금액이 큰 B형 내기를 받아들인 비율이 50%에 미치지 못한 데 비해 영어를 사용한 그룹은 67% 가까이 B를 받아들였다. 연구팀을 이끈 케이사르 교수는 “외국어로 판단하면 모국어를 사용할 때보다 감정적인 판단이 줄어들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어로 사고하면 생각이 명료해진다고 하는데, 그것이 그저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알려준 셈이다. 외국어로 사고하면 모든 문장마다 번역을 해야 하기에 직관적 사고보다는 분석적 사고가 활성화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영어 회화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정작 외국어를 통해 배워야 하는 의사소통의 내용, 그 자체는 실종되고 만다. 이럴 때 주의깊게 들어보아야 할 영어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하는 영어다. 그분의 영어 발표를 들어보면 참 잘 들린다. 영국식이나 미국식이 아니라 한국식 발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도 반 총장의 영어를 두고 촌스럽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부러워할 것은 그분의 회화 능력이 아니라 전 지구적 관심사, 논리적 사고 전개 능력이다. 전문 통역사가 될 생각이 아니라면 외국어 회화 능력은 핵심 능력이 아니라 변두리 기술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정보기술(IT)의 급속한 발전으로 머지않아 구술 외국어까지 번역하는 기계가 등장할 전망이니 외국어 회화 능력을 키울 것이 아니라, 외국어를 도구 삼아 합리적 사고를 개발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한국이 인구 5000만명, 국민소득 소득 2만달러를 넘어서면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 G20 정상회의처럼 큼지막한 국제행사도 자주 열리고 있다. K팝 스타들이 구글 본사 앞에서 영어로 노래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유튜브를 통해 이를 관람하는 세상이다. 상황이 이러니 우리 사회가 영어에 대해 느끼는 콤플렉스도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라디오 교통방송은 현재 100% 영어로 진행하는 라디오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방송이 아닌 교통방송에서 100% 영어방송을 한다니 참 용감하고 대단한 시도다.

이제 우리 사회는 시험용, 회화용 영어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글로벌 사회의 주역답게 외국어로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하고 동시에 우리 문화를 전파하는 능력까지 키울 필요가 있다.

김용성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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